살아가는 이야기

고양이 이야기 세가지

더큰돌 2025. 12. 21. 10:03

1편 길냥이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이른바 ‘캣맘’들을 한때 탐탁지 않게 여긴 적이 있었다. 자연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 인간이 생태계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겨울이 깊어지고 눈이 소복이 쌓인 날이면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자연에서 먹이를 찾기 어려운 계절, 특히 어린 고양이들은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선다. 이건 생태계 논쟁을 떠나 인간계의 주변에서 ‘당장 굶주린 생명’이라는 현실적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겨울철에 한해서만 먹이를 챙겨주기로. 고양이 전용 사료와 참치캔을 조심스레 내놓아 보았더니,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다. 인기척만 나면 어디선가 타다다닥 발소리가 들리고, 서너 마리의 길냥이들이 순식간에 몰려온다. 대부분 아직 어린 녀석들이다.

차갑던 거리 한켠에서 작은 생명들이 안도하며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생태계의 균형”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이 스며든다. 겨울만큼은, 이 동물들이 조금은 덜 고생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묘한 감정이 든다. 작은 생태계 앞에서 인간이 마치 ‘무언가를 결정할 권능’을 가진 존재라도 된 듯한 착각이 살짝 고개를 든다.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전지전능한 사랑의 신이 존재하는지 의문이고, 굳이 찾으라면 변덕스러운 자연 그 자체일지 모른다.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좁은 생태계 한켠에 서서, 한 생명을 도울까 말까를 고민하며 스스로의 사유를 다듬어가는 것뿐 아닌가. 겨울만큼은 동물들이 조금 덜 고생하길 바라는 마음에 점을 하나 찍을 뿐이다.

2편 생태계

요즘 들어 쥐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길냥이 개체수가 줄어든 것이 원인 아닐까 하는 가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넓어졌다. 여기에 중성화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길 위의 고양이 숫자는 눈에 띄게 감소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깔끔해 보일지 몰라도, 도시는 시골이든 어쨌든 하나의 생태계이고, 그 생태계에서 고양이가 차지하던 역할은 작지 않았다.

고양이는 완전히 야생도, 완전히 가축도 아닌 독특한 존재다. 인간의 도시를 배경으로 살지만, 먹이를 조금만 줘도 ‘만족’해 버리는 동물도 아니다. 물론 배가 부르면 사냥을 덜 한다. 하지만 적당한 긴장감과 영역 유지 본능 덕분에 마을 주변의 쥐 개체수를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고양이가 한꺼번에 줄어든다면? 비어버린 생태적 빈틈은 늘 그렇듯 다른 존재가 먼저 채운다. 그게 이번에는 쥐일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또 다른 의미로 귀찮은 존재인 닭둘기가 증가할지도 모른다.

인간 주변의 가까운 생태계는 인간의 선호나 깔끔함의 기준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길냥이는 줄어들수록 좋다는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이 작은 생태계의 현실이다. 적당한 야생성과 균형이 유지될 때, 인간과 동물 모두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의 쥐 소식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3편 계급

어떤 고양이는 집 안에서 태어나자마자 자기가 왕족이라도 되는 줄 알고 산다. 생수만 마시고, 사료는 기호성이 안 맞으면 집사에게 불만을 늘어 놓을 수도 있다.
반면 어떤 고양이는 태어나자마자 거리라는 정글에 배치되어, 매일 먹이 KPI를 채우며 살아남는다.
혈통? 물론 저 길냥이도 거슬러 올라가면 뭔가 대단한 혈통이 나오긴 나오겠지만, 정작 본인은 부모가 누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엔 아이러니한 반전이 있다. 혈통이 화려하지 않을수록 오히려 생존에는 유리하다. 온갖 유전자가 뒤섞인 잡종의 위력 덕분에, 혹한과 굶주림, 돌발상황이 일상인 도시 생태계에서 더 끈질기게 버틴다. 말하자면 고급혈통은 명예를 얻고, 잡종은 생명을 얻는 셈이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도 딱 그렇다.
누군가는 금수저라는 자동 급식기 앞에 태어나고,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오늘 굶지 않기라는 데일리 목표를 설정한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작점이라는 이름의 RNG(랜덤 생성)가 이미 밸런스를 깨놨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고양이나 인간이나—출발선은 랜덤이고, 그 뒤의 모든 드라마는 그 랜덤성을 합리화하려는 발버둥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길에서 어떤 고양이가 너무 당당해 보여도, 너무 초라해 보여도 놀랄 필요 없다.
혈통은 몰라도, 생존 스킬은 대부분 우리보다 나을 가능성이 높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