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개는 본래 사회적 동물이었다.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제 몫의 역할이 있었고, 할 일이 없을 때면 무리를 지어 마을을 어슬렁거렸다. 그렇다고 늘 집단으로만 움직인 것은 아니어서, 개들 사이에도 일대일 개별적인 교류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고르자브종’ 새끼들이 태어났고, 사람들 역시 그들을 특별히 위험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개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집에 사는 누구의 개인지, 낯선 개인지 아닌지를 개들도 사람들도 금세 알아차렸다. 물론 외부인의 왕래가 잦은 지역이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집에서는 개를 묶어 키우기도 했지만, 그것이 주류였던 기억은 없다.
그렇다고 마을 개들이 언제나 온순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일탈이 있었다. 한 번은 들판에 매어 두었던 염소 한 마리가 끔찍하게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는데, 조사 끝에 개들의 소행으로 밝혀진 적도 있다. 마을 개들을 하나하나 불러 주둥이와 머리털을 살폈고, 그 흔적으로 범인이 가려졌다. 아마 그 순간만큼은 억눌려 있던 야성이 깨어났던 것이리라.
당시 시골개들은 흔히 ‘똥개’라 불렸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실제로 개가 똥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1970년대까지도 농촌에서 간혹 마주할 수 있었던 풍경이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시골개들이라고 해서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지만, 자연은 자유로운 만큼 험악하다. 그들에게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였고, 어떤 방식으로든 잡아먹힐 수 있는 존재였다.
오늘날의 ‘반려견’ 개념에 비추면, 그때 개들의 삶은 너무도 달라 보인다. 어느 쪽이 더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럼에도 시골개 쪽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나는 개가 아니고, 그들에게 직접 물어본 적도 없다. ^^
당시 시골개들의 외모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누렁이, 검둥이, 가끔 바둑이. 귀는 쫑긋 서지 않고 대개 앞쪽으로 꺾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잡종이었다. 하지만 순박했고, 대체로 위험하지 않았다. 반면 오늘날의 개들은 어딘가 다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묶어 키울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를 가둬 두거나 묶어 놓은 장면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귀찮아지면 은밀히 버려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길을 가다 멋진 개를 보면 저절로 눈길이 가고 호의를 표하게 된다. 생각과 감정은 늘 일치하지 않는 법이다.
시골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마을에 가끔 개장사가 들어오던 날의 풍경이다. 개장사에게 팔려가면 보신탕이 된다는 사실을 개들도 somehow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석양을 등지고, 온 동네 개들이 사력을 다해 개장사의 오토바이를 추격하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오늘날 얼마 남지 않은 시골개들의 처지는 그리 좋지 않다. 마을 공동체는 오래전에 무너졌고, 사람 사는 것조차 버거우니 누가 개들에게까지 신경을 쓰겠는가. 평생 묶인 채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짖어대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다.
게다가 요즘에는 개들의 품종도 많이 달라졌다. 누렁이, 검둥이, 바둑이는 거의 보이지 않고, 어딘가 혈통이 있어 보이는 개들이 눈에 띈다. 어쩌면 저 개의 조상도, 처음에는 어느 괜찮은 가문의 사냥견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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