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구조, 인간이라는 존재
처음 사회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세계적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이 200명뿐이라는 말을 믿었다.
그 숫자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 믿음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교육은 치열했고
배움은 순수했다.
연구실 같은 사무실에서
나는 기술을 익히며 존재 이유를 찾았다.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
나는 분명히 필요로 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탄탄했던 전성기,
명확했던 역할,
선명했던 정체성.
그러나 조직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았다.
성장하고, 변하고, 재편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나는 그것을 망명이라 불렀다.
그때 깨달았다.
회사는 개인의 정체성을 보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회사는 필요에 따라 배치하고
효율에 따라 이동시키며
목적에 따라 사람을 정의한다.
처음에는 그것을 상실이라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것은 해체가 아니라 재구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때 기술자였던 나는
시장과 손익을 배우며 사고의 폭을 넓혔다.
엔지니어의 정확성에
경영의 복잡성을 더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단일한 기능이 아닌,
복합적인 존재가 되어 갔다.
정체성은 직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은퇴를 앞둔 지금
나는 회사를 원망하지 않는다.
회사는 자신의 논리로 움직였고
나는 그 안에서 나의 논리를 세웠다.
회사인간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결국 구조를 넘어섰다.
조직은 나를 성장시켰고
나는 조직을 통해 나 자신을 실험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직위도, 부서도, 성과표도 없이
‘존재’로서의 나를 살아가는 시간일 것이다.
회사는 하나의 무대였을 뿐이다.
배우는 이제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비로소 묻는다.
나는 누구였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이제 나는 회사인간을 떠난다.>
직위로 설명되던 존재에서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존재로 옮겨 간다.
그동안은 조직의 목표가 곧 나의 목표였다.
이제는 나의 질문이 나의 목표가 된다.
성과 대신 시간의 깊이를,
보고서 대신 사유를,
직함 대신 이름을 남기는 삶.
기술과 경영을 배웠다면
이제는 삶을 경영할 차례다.
회사가 성장하던 시간 속에서
나는 역할을 수행했다.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는
역할이 아니라 선택으로 살아갈 것이다.
제2의 인생은 확장이 아니라 전환이다.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내려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초보자가 된다.
처음 사회에 발을 디뎠을 때처럼,
그러나 그때와는 다른 자유를 가진 채로.
회사인간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한 인간의 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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