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에 대한 이야기

비사성

더큰돌 2025. 10. 24. 11:58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의 초입에 비사성에 올랐다. 고구려의 흔적은 이미 바람 속에 흩어졌고, 그 자리를 대신해 당나라를 기리는 글귀들만이 객을 맞이한다. 저 발해만의 잔잔한 물결과 대흑산의 봉우리만이 천사백여 년 전, 이 땅을 뒤흔들던 거대한 사건들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출장으로 대련시를 방문하였다. 다른건 몰라도 이곳 고구려 방어선의 시작점인 비사성만은 꼭 둘러보고 싶었다. 이곳 사람들은 바사성은 잊었고 지금은 ‘대흑산’이라 불렀다.

시내에서 등산로 입구에서 1.3키로미터 남짓 40분가량 헐떡거리며 힘겹게 올라갔다.  경사가 급한 산길이다.

맨 처음 여행객을 맞이하는 관문에 “비사성”이라는 흔적이 새겨진 석판이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고구려 시절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저 돌에 새긴 문자만이 여기가 “비사성”이었다는 흔적을 말해주는구나
비사성 봉우리
망루 하나가 발해만을 굽어보고 있다
당나라를 기념하는 망루가 덩그러니 앉아 있다.

고구려의 방어선은 여기 발해만의 시작점 비사성에서 출발한다. 흔히 고구려를 민족의 방파제라고 하였는데 한 순간에 무너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눈에 보이는 비사성은 본래 모습이 아니다.
역사 속 유명한 비사성 전투는 645년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 당시, 당군이 고구려의 수군기지였던 비사성(卑沙城)을 함락시킨 전투이다. 비사성은 삼면이 절벽이고 서문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지형이었지만, 당군은 끈질긴 공격 끝에 성을 함락시키고 8,000여 명의 주민을 생포하였다. 성의 규모를 짐작하게 숫자이다.
물론 그 전에 고구려를 침공하였던 수나라도 있었다. 백만대군을 동원한 대규모 세계 대전이었고 우리에게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도 유명하다. (아래 지도)
그 후 발해 시기에는 남경남해부 요해군 남해군절도 관할이었고, 그 다음 요나라 영토로 넘어간 후에는 봉천부 해성현에 속하였으며, 금나라 때는 징주라 하였다. 비사성은 중원에서 평양에 갈 때 꼭 들러야 하는 교통상의 요로에 있어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은 곳이다. 비사성의 지명 유래는 ‘장성’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그 후 천년이 지났고 이제 중국식으로 복원된 역사의 현장 어디에도 고구려 발해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게 되었다.

백여년전까지만해도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하였던 이곳이 어떻게 대규모 산업도시로 발전하였는지 이제 대련시의 역사를 짧게 알아보면, 이는 우리가 겪은 근대사의 비극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조선에 주둔하던 청군을 밀어내고 일본군이 한성을 점령하였다. 이후 일본군은 여세를 몰아 여기 대련, 뤼순이 포함된 요동반도를 넘어 산동까지 진출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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