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에 대한 이야기

수탕석교

더큰돌 2025. 8. 20. 12:25

뜨거운 햇살이 작렬하는 한여름 정오, 나는 적어도 700년은 되었을 법한 돌다리를 찾아 나섰다. 충남 논산과 부여의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수탕석교”였다. 네비게이션을 따라 왔지만 마지막 길목은 좁은 농로였다. 마치 다리까지 다가가는 길조차, 과거로 들어가는 관문인 듯 느껴졌다.

다리의 상판은 평평하고 단단했다. 돌 사이에 빈틈은 없었고, 교각은 정교하게 중심을 잡아 오랜 세월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다. 수레와 마차가 지나가도 흔들림 없었으리라. 돌 위에 얹힌 시간의 무게조차, 오히려 이 다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 듯하다.

함께 동행한 토목기술자 친구는 곁에서 다리를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긴 세월 동안 지반 침하 없이 견뎌냈다는 점이지.”
전문가의 진단 속에는 단순한 감탄을 넘어, 고려 시대 토목기술의 정밀함과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오래된 석교 앞에서 나는 고려 장인의 손길을 떠올린다. 물길을 건너기 위해 돌을 다듬고 맞추던 순간, 그들은 단순히 다리를 세운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을 만든 것이리라. 그리고 그 돌 위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자국들이 오고 갔다. 장터로 향하는 농부, 전쟁터로 나아가는 군사, 객지로 떠나는 나그네. 모두 이 다리를 지나며 자신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돌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운명과 세월뿐이다. 그 앞에서 나는 문득 묻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길을 건너고 있는가.

돌은 인간이 가진 시간의 단위와는 전혀 다른 호흡으로 존재한다. 인간의 세월이 계절과 세대를 단위로 흘러간다면, 돌의 시간은 지층과 지질을 단위로 겹겹이 쌓인다. 돌다리는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지만, 그 본질은 인간을 훨씬 넘어서는 시간성을 품고 있다.

수백 년 전 장인의 손끝에서 다듬어진 돌은, 그날부터 오늘까지 변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위를 지나간 수많은 발자국, 소와 수레, 바람과 빗물은 사라지고 흘러갔지만, 돌은 묵묵히 그것들을 받아내며 기록한다. 다리가 말하지 않으니 우리는 그것을 잊을 뿐, 돌은 단 한 번도 세월을 놓친 적이 없다.

돌은 망각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할 뿐이다. 인간은 말과 기록으로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만, 결국 언어는 바래고 문헌은 소실된다. 그러나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시간의 증언자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돌 앞에서 숙연해진다. 돌을 바라보는 순간,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돌다리 위에서 발을 멈추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그네와 이어지고, 미래의 누군가와도 이어진다. 돌은 순간을 영원 속에 고정시키는 매개체이자, 인간의 덧없음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부록] - 논산문화원 홈페이지에서 요약 인용함.  
수탕석교는 원래 석성현과 노성현, 은진현을 잇는 교통로의 핵심 다리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세기 말~16세기 초)에도 기록이 남아 있어, 적어도 조선 초기에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으며, 고려 말에 놓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 여러 지리지에서도 그 이름이 확인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논산과 부여를 잇는 신작로와 군계다리가 새로 건설되면서 수탕석교의 기능은 점차 축소되었고, 결국 농로 정도로만 쓰이다가 하천 제방 공사와 도로 정비로 그마저도 사라졌다. 1980년대 중반에는 펄 속에 완전히 묻혀 존재조차 잊혀졌다.

1998년 석성천 준설공사에서 다시 발굴된 뒤, 보관되던 석재를 모아 2004년 원래 자리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지금의 다리는 다섯 개의 교각 위에 장대석 상판을 얹은 구조로, 길이 13.5m, 폭 1.3m, 높이 3.5m에 이른다. 양식으로 보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다리 옆에는 원래 일곱 개의 비석이 있었으나 현재는 세 개만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숙종 원년(1675)의 수탕석교사적비, 이어서 영조 16년(1740)의 석성수탕교비, 그리고 대한제국 광무 2년(1898)의 석성수탕석교중수비이다. 이들 비석에는 다리를 중수하면서 희사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돼 있으나, 다리 건설의 주체와 과정을 전하는 직접적인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오늘날 수탕석교는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혔다가 다시 빛을 본 돌다리로서, 단순한 교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길을 걸으며 옛 선조들의 삶과 발자취를 상상하는 일은 곧 역사를 몸으로 건너는 일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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