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와 서울로에 대한 감상
전쟁의 해, 그리고 서울로(Seoul Street)
코로나 이후 세계 정세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분쟁은 사라지지 않고, 전쟁은 오히려 끊이지 않는다. 2025년 6월, 이 시기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전장 한복판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미국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끌려들고 있는 듯하다. 이란은 과거 미국이 무너뜨렸던 이라크와는 ‘체급’이 다르다. 종교, 사상, 민족 정체성이 내부적으로 비교적 통일되어 있는 강한 국가다. 그렇기에 미국 입장에서는 더 깊은 개입이 쉽지 않다. 벙커버스터를 투하할 수는 있겠지만, 그다음은 무엇인가? 설령 계획이 있다 해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
이란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강남의 테헤란로다. 그 거리에는 나만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처럼 테헤란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릴 때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그 도시에는 서울로가 있다고 했지. 과연 어디쯤일까?
알아보니 테헤란 북부의 에빈(Evin) 지구에 있다고 한다. 번화가보다는 차분한 주거 지역. 아파트와 상점이 함께 어우러진 중상류층 동네. 전쟁의 도시 한복판에도, 이렇게 ‘서울’이라는 이름을 단 거리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거리는 단순한 명칭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1977년, 당시 이란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샤의 서울 방문을 기념하여, 양국은 서로의 수도에 상대국 이름을 딴 거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는 ‘테헤란로’, 테헤란에는 ‘서울로(Seoul Street)’가 생겨났다.
1970년대는 한국과 이란 모두 냉전기의 반공 진영에 속해 있었다.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각각 페르시아만의 안정자와 동북아의 신흥 산업국으로 서로를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했다.
특히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한국은 중동과의 관계 강화에 주력했고, 이란은 원유 수출 다변화와 경제 현대화를 위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이란은 풍부한 석유 자원을 기반으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고, 도로, 항만, 수도시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었다.
이 시기 한국의 건설사들은 적극적으로 이란에 진출했다. 현대건설, 대우 등은 이란의 대형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했고, 한국은 기술력과 인력을 수출하며 경제적 협력을 넓혀갔다. 테헤란로는 그러한 우호 관계의 상징으로 지금도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일은 알 수 없다.
이제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 중 하나이고 그런 이유로 이란과 외교적으로도 멀어진 상태다. 하지만 정작 양국이 서로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야 할 본질적인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협력의 여지가 존재하고, 역사적으로도 전혀 낯설지 않다.
언젠가 다시, 상황이 좋아진다면—
먼 옛날 페르시아 상인들이 신라와 고려의 항구에 도착해 비단과 향신료를 교환하던 시절처럼, 이란과 한국이 다시 평화롭고 실질적인 우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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